세상만사 보따리

개 한 마리 있으모 구해주소 ..... 늙으모 죽어야지, 내가 너무 오래 산다

딸랑이* 2024. 7. 26.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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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차를 탄지도 거의 두 달째가 다 되어간다.

어떤 어머니와는 데면데면 하기도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예닐곱 번을 뵙고보니 대부분은

장난삼아 택호를 부를만큼 많이 친해졌다.  그런 어머니

중에서 목요일마다 뵙는 월포댁이라는 택호를 가진 어머니가

계신다.  비닐 하우스가 많이 있는 벌판에 조금 외딴 느낌이

드는 곳에 있는 그 어머니 댁에는 목욕차 소리를 듣고

껑충껑충 뛰며 짖는 진돗개 한마리가 묶여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까닭인지 성가시도록 반기고 짖어대던 개가

보이지 않고 녹슨 쇠줄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욕조에

어머니를 누이고 이태리 타월에 때 비누를 문지르고는

목욕을 시작하려는데 함께 목욕을 시키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물었다. "엄마!  개는 어디갔어?" 그러자 어머니가

"아이구, 그기, 사료를 한달에 이만오천원씩이나 쳐묵고 해서

개장사한테 조 삣다아이가" 하시는 것이였다. 

"아니, 어머니, 사료는 아드님께서 사들고 오시던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키우던 개를 어찌 개장사한테 줍니꺼?
여긴 집도 외따로 있어서 큰 개라도 있으면 어머니도 의지가

될낀데예" 조심스럽게 어머니의 때를 밀던 내 손끝에 나도

모르게 힘이 뻗쳤던지 어머니가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저번주만 해도 꼬리를 똬리처럼 말아 올리고 우리를 반기던

백구의 모습이 떠올라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돌아가실때 싸갈 것도

아닌데 개 사료 값이 아깝다고 개를 개장사에게 넘기다니,

 

"그래도  개장사한테 그냥 주기는 너무 서분해서..." 그럼 그렇지

그냥  넘긴게 아니라 돈을 주고 팔았겠지 했는데 어머니의 뒷말에

나는 욕조를 잡고 쓰러질뻔 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도

파안대소를 하게 되는것 같았다. 

"너무 서분해서 개소주를 내주라 캤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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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년을 키운 개라고 했다.  가만히 말의 앞뒤를 헤아려 보니

어머니가 작정하고 약을 해드신 것이였다.  목욕을 할 때마다

입에 붙은듯이 

"내가 죽어야 할낀데, 와이리 않죽노? 고마 자는 잠에  살 가모 되낀데"

구십이 넘은 자신의 장수에 대한 염치를 보여주는 어머니를 위로하느라

매주 진땀을 빼곤 했었다. 

"어머니! 우짜낍니꺼? 어머니가 지은 복이 많아서 하늘에서 더

살아라카는데예, 넘들은 더 살고 싶어도 명이 짧아서 그리샀는데

다 어머니 복 아입니꺼?"

"그래도 늙으모 죽어야지, 내가 너무 오래 산다 아이가?"

 

우리는 순박하고 착해보이는 월포댁 어머니를 참 좋아했다.

몸에 바르는 바디로션이나, 시내로 나와야 살 수 있는 과자들을 일부러

사다가 드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만정이 다 떨어져서는

먹고 가라고 잘라놓은 수박도 먹지 않고 시간이 다 되었다며

거의 도망을 치다시피 하며 그 집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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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할머니의 냉장고에는 오년 동안 그녀를 지켜주고 그녀에게 꼬리를

흔들고, 눈을 빛내며, 그녀의 손등을 핧아대던 진돗개가 개소주가

되어서 들어 앉아 있다. 도통 입맛이 없고 기력이 없다던 그녀가

일주일만에 어쩐지 기력을 좀 회복한듯이 보였던 까닭이 그기 있었다.

저번주에 객지에서 내려온 작은 아들이 개를 주려고 간식과 사료를

사들고 온 것을 보았다.  어떻게 작은 아들이 그렇게 애지중지 챙기는

개를 잡아 드실 생각을 하신 것일까? 그러면서 우리에게 부탁하는 말에

오만정이 아니라 십만정이 더 떨어졌다.

"오데, 개 한마리 있으모 구해주소.

개가 있다가 없잉께 너무 허전하네"

 

정말 걱정이다. 백살이 다 되어서 기어다니는 어르신들은 오래 살거라고

키우던 개를 다 잡아 드시는데,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고, 젊은이들은

길가다가 죽고, 군대가서 죽고, 사고 나서 죽고, 이래 죽고 저래 죽고

어쩐지 저런 노친네들이 포효하는 호량이를 닮았다고도 하고 토끼를

닮았다고도 하는 대한민국을 보신탕으로 해드시고 있는 기분이 든다면

나도 나쁜 인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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