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보따리

6.25 전쟁의 영웅 .....한국 경주마의 전설

딸랑이* 2021. 4. 8.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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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1949년생 품종은 몽골말이다. 한국 이름은 아침해였으나 미군 병사들은 무모한이라는 뜻의

 

'레클리스(Reckless)'라는 이름을 새로 붙여주었다. 전쟁터에서 겁없이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기 때문

 

당시 이 말은 신설동 경마장에서 소년 마주인 김혁문이 키우던 경주마였는데 전쟁중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누나의 의족을 구하기 위해서 아침해를 팔게 된다.

 

마침 수송용 군마를 구하던 미해병1사단 5연대 에릭 페더슨 중위가 250달러에 구입하게되고

 

1952년 10월 26일자로 미 해병대에 입대하게된다.

 

 

체중 400kg의 작은 이 암말 레클리스는 포탄이 총알과 포탄이 날아오는 전장에서 무거운 탄약더미를

 

부지런히 나르며 임무를 수행했다.

 

차량이 달릴 수 없는 한반도 전방의 험준한 산지에도 문제없이 달리며 포탄을 옮겼고, 다른 말과는 달리

 

1~2번 같이 동행하면 그뒤에는 알아서 길을 찾아가고, 적이 사격하면 엎드려서 사격이 끝날때까지 기다렸고,

 

임무중 부상을 입은 경우에도 끝까지 임무를 완수했다.

 

 

특히 미 해병대 한국전사 중 가장 치열하기로 손꼽힌다는 네바다 전초 전투에 참가해서 빛나는 전공을 세운다.

 

 

첫날 아침해 혼자서 탄약보급소에서 산 정상까지 51회 왕복하면서 포탄을 날랐다.

 

그날 사용한 무반동총 포탄의 95%인 4톤이 넘는 탄약을 혼자서 운반한 것이다.

 

5일간 전투중 총 386회, 거리로는 56km를 적의 총탄이 쏟아지는 가운데에서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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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해는 전장에서 무모할만큼 대범하게 행동해서 동료 해병들은 그녀를 레클리스,겁없는 여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레클리스는 장정 12명이 짊어질만한 통신선을 메고 통신선 구축을 도왔고,

 

부상병을 등에 업고 수송하기도했다. 동료 해병들은 이러한 레클리스가 다칠 것을 우려해서

 

기꺼이 위험을 무릎쓰고 자신들의 방탄조끼를 벗어서 입혀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비전투 상황에서 레클리스는 상당한 먹보였다고 전해진다. 건초 외에도 감자,땅콩버터 샌드위치,초콜릿,

 

사탕 같은 평범한 음식부터 스크램블드 에그,베이컨과 같은 동물성 음식도 가리지 않고 먹었으며,

 

코카콜라와 맥주도 즐겨 마셨다. 자신들이 먹는 음식을 그대로 받아먹는 모습에 해병들은 동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휴전 협정이 체결되자 레클리스는 그녀를 처음 해병대로 입대시킨 에릭 중위와 같이 1954년

 

미국으로 가게된다. 그 후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있는 캠프 페들턴에서 지내게된다.

 

적의 총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한 레클리스의 용맹함은 랜돌프 해병1사단장에게도

 

알려져서 1957년 E-6(하사)로 진급하게되고, 1959년에는 성대한 전역식을 치르며 은퇴하게 된다.

 

 

레클리스는 전쟁에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생전에 퍼플 하트 훈장 2개,모범 근무장,미국 대통령 표창,

 

미국방부 종군 기장,유엔 종군 기장,한국대통령 표창장을 받게되었고 1997년 라이프 매거진 특별호에서

 

미국 100대 영웅에 선정된다.

 

(함께 선정된 인물들을 보면 조지 워싱턴,토머스 제퍼슨,에이브라함 링컨,존 웨인 등등)

 

그녀는 자식 3마리를 낳았으며 1968년 19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미 해병대는 그녀가 죽자 정식으로 엄숙한 군 장례식을 치러주었고 기지 내 묘지에 매장하였으며

 

레클리스가 기거한 마구간 옆에 기념비를 세웠다.

 

 

미국 국방부는 2013년 7월 26일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미국 버지니아 주 관티코의 해병대

 

본부 내 해병 박물관에서 기념관 헌정식을 열었다. 레클리스 기념관에는 이 말의 동상과 함께

 

각종 자료가 전시 중이다.

 

레클리스는 미국 해병대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가 부사관으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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