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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당에서 고소해도 할 말이 없지 않느냐는 부산의 성심당 ..... 부산당

딸랑이* 2025. 12. 2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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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당이 이렇게 잘 된 건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이 대전역에서

찐빵 팔아 시작한 역사를 잊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녁이면 팔던 빵 고아원에 보냈었죠.

 

그래서인지 오래 전 성심당 본점이 전소됐을 때

대전사람들이 응원의 빵 사주기를 했었죠.

지역민들의 인심을 잃지 않고 장사해온 역사가

성심당의 정체성 같아요.

 

"고향인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던 창업자 실향민 출신 임길순 암브로시오는 흥남 철수작전 때 조모와 부인, 딸 4명과 함께 메러디스 빅토리 호를 타고 월남하였다. 이후 1956년 생계를 위해 가족을 데리고 가족과 함께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가 열차 고장으로 대전에 내리게 되었다. 대전에 얼떨결에 정착하게 된 채 살 길이 막막해 찾은 대흥동 성당에서 구호물자로 배급받은 밀가루 2포대를 내주었는데, 한 포대는 본인 가족을 위해, 나머지 한포대로 찐빵을 만들어 대전역 앞에서 천막을 치고 찐빵 장사를 시작한 것이 성심당의 시작이다.

 

•••

 

그럼에도 창업주인 임길순은 "성당 옆에 가게를 지어야 한다"며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점포 이전을 고집하였다."

 

이제 왜 이름이 성심당인지 아시겠죠? ㅎㅎ

창업주 가족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입니다.

(성심 聖心 :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거룩하고 사랑이 가득한 마음'을 가리키는 종교적 용어)

 

신기한 건 정말 하느님의 가호를 받았는지

성심당이 은행동으로 이전 후

상권이 결국 은행동으로 이동합니다.

 

미담 중 하나

 

"빵 나누기가 꼭 좋은 결과로만 돌아온 것은 아니다. 1987년 민주화 운동 때 임 대표는 성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대학생들에게 빵을 나눠 줬다는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행정 당국의 위생 조사도 받았다. 가게를 영업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당국의 압박에 임 대표는 한때 사업을 접고 이민을 할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 대표가 당시 대학생들뿐 아니라 전경들에게도 빵을 나눠준 사실이 밝혀지고, 이후 6ㆍ29선언이 이어지면서 성심당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임 대표는 “전경한테도 빵을 나눠 줬다는 증언을 해준 것도 이웃 주민들이었다”며 “성심당 위기극복에는 늘 이웃의 도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완벽한 중립 ㅎㅎ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707091427994936

 

 

예전에 뉴욕제과 대전 분점 만들 때

주인장 성심당 문 닫을까봐 잠도 못 잤다는데

 

현재 순위에 뉴욕제과는 없네요. ㅎ

 

물론 그때도 대전 사람들은 뉴욕제과 대신

성심당만 갔다고 하네요.

역시 동네 인심 잃으면 못 하는 게 장사인 듯요.

 

백조제과도 오랜 시간 부산에서 버티며

만들어진 서사가 있을 텐데

위 짤 속에 보여지는 게 다라면 아쉽네요.

 

맥락 없는 리브랜딩은 자신을 부정하는 거고,

사람들은 그런 가게에 매력을 느끼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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