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보따리

윈스턴 처칠의 숨겨진 어두운 진실 .....

딸랑이* 2022. 3. 29.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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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ston Churchill’s famous last words: “I’m bored with it all.”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유언 : "이젠 전부 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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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외국 위인이 바로 윈스턴 처칠일 겁니다.

 

처칠에 관련된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처칠이 지독하게 못사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거나

혹은 자수성가한 훌륭한 사람이라는 내용들만 잔뜩 나오는데

 

하지만 실제는 정반대였습니다.

처칠은 부모가 모두 부유한 귀족이나 재벌 가문이었죠.

 

즉, 처칠은 철저하게 가문 덕을 보고 출세한 사람이지 무슨 자수성가한 위인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사실 윈스턴 처칠의 인생은 그냥 흔한 '핵금수저 마마보이 도련님의 인생'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 중간에 2차 대전의 히틀러라는 희대의 광인이 등장해준 덕분에 임팩트가 생겨난 거죠.

 

 

심지어 처칠이 스스로 흙수저에서 올라온 듯 포장했던 적도 있습니다.

 

실제는 '말보로 - 처칠 가문'이라는 초 핵 금수저 귀족 + 재벌 집안 출신이거든요.

 

 

애초에 해군 시절에 집안 배경이 아니었으면, 장교-장관 시절에 사고친 것만으로도 인생 종치기 충분했던 쓰레기입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 과정도, 어떻게 봐도 돈으로 노벨 문학사을 산 것 아니냐는 의심이 안 들 수가 없고요.

 

 

https://www.sedaily.com/NewsVIew/1KV1OKM27G

 

집안이 얼마나 핵금수저였는지, 그리고 노벨 문학상 수상 경위 및 장교 - 장관 시절의 패전 등등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기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위인전 등을 통해 '날조미화'된 이야기만 도는 경향이 있는데, 그 중에는 하층민 출신에서 성공한 사례라고 날조한 것도 있거든요.

 

제가 어릴 때 그걸 보고, 진짜 하층민에서 수상 자리까지 올라간 걸로 착각했다가 뒤에 큰 망신까지 당했던 적이 있으며, 저 말고도 속은 사람을 몇 봤었습니다.

 

- 그게 아니면 집안 이야기는 통째 빼버리고, 이상한 일화 같은 적당히 날조해서 몇 개 넣는 식이죠.

 

 

그렇게 날조된 위인전에는 절대 실리지 않는 진실 중 하나가 바로, 돈으로 노벨 문학상을 산 것이라고 의심받는 사건입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과정도 수상하기 그지 없는데.

 

 

https://www.donga.com/news/People/article/all/20040223/8032865/1

 

8년간 후보에 꾸준히 올랐지만, 최종심 이전에 계속 탈락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리고 특정 심사위원이 매번 극찬을 쏟아부어서 후보에 오르고, 심사를 통과하는 식이었던 거죠.

 

- 헤밍웨이를 기어이 심사대상까지 끌어올린 몇 명의 심사위원은 당시 기사에서부터 '돈 받았냐' 소리를 대놓고 듣는 수준이기도 했습니다.

 

 

https://www.idaegu.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8422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때 문학상 경쟁자가 헤밍웨이입니다.

 

노인과 바다 등등의 저자 헤밍웨이를 밀어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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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확실하게 납득되는 분은 좀 설명 부탁드릴께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19748224

 

이 기사에서는 '말의 힘' 운운하면서 쉴드치기 바쁜데, 상식적으로 저게 가능한 말인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문학상까지 받은 연설문이라는 게 세상 어디에서도 제대로 출판 되어 나오는 곳이 참 드뭅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죠.

 

 

이러한 경향은, 애초에 윈스턴 처칠이 정치계에서 '역경을 넘었다' 라고 하는 부분에서도 드러납니다.

 

 

http://ladenijoa.egloos.com/3925757

 

사라예보 암살사건에서 시작된 대전 초기, 갈리폴리 해전에서 대패하는데 오스만의 개입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원래는 중립을 표방한 오스만이 "반 영국" 진영으로 건너가게 만든 것이 바로 처칠입니다.

 

 

이미 대금 지급 끝났고, 진수까지 끝내서 오스만에 납품해야 하는 '전함'을 두고 무슨 짓을 벌였느냐.

 

'오스만에 군함이 가면, 그 군함 갖고 영국을 위협할 수 있다.' 라는 희대의 개헛소리를 짖어대면서 압수한 겁니다.

 

중립 선언하고, 양측 모두에 개입 안 하는 중인 오스만을 두고 일부러 저런 일을 벌인 겁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11554480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저런 짓으로 전쟁에 불까지 땡겨놓고 갈리폴리 패전까지 죄다 책임 독박쓰고 나가떨어지는 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윈스턴 처칠의 정치 인생은 저기서 쫑나지 않습니다.

 

그 이후에 붙은 별명을 통해서 윈스턴 처칠이 어떠한 경위로 성공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시쳇말로, 집안에서 온갖 로비를 벌인 덕분에 숨통이 붙어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마마보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거죠.

 

그 당시 시대상으로는 여자는 웬만하면 '너서리 라임'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 하던 시대입니다.

 

모친이 사방팔방으로 얼마나 로비를 해댔으면 저런 별명이 붙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로비의 내용이 정말 기상천외하고, '마마보이' 라는 멸칭이 나온 배경 또한 상상을 초월합니다.

 

 

https://www.standard.co.uk/lifestyle/winston-churchill-his-mother-and-the-philandering-prince-6783567.html

 

 

그 어머니 랜돌프 부인은, 치맛바람 수준을 넘어서 성로비를 벌인 정황까지 있는 사람입니다.

 

 

Winston Churchill's mother had a two-year sexual liaison with King Edward VII, the Queen's great-grandfather, according to a new book. Lady Randolph also swindled the wartime Prime Minister and his brother, Jack, out of part of their inheritance from their father Lord Randolph Churchill when she remarried, hitherto unseen family letters reveal. The correspondence also shows Winston wrongly implied that his parents neglected him, and that minimised Jack's role in family history in order to inflate his own reputation.

 

 

새로 발견된 문헌에서는, 윈스턴 처칠의 모친 랜돌프 부인은, 현 여왕(엘리자베스 2세)의 증조부인 에드워드 7세와 2년간 성적인 관계를 가진 것이라는 내용이 발견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 2차 대전 당시 수상(윈스턴 처칠)과 그의 형제 잭이 상속했어야 했던 아돌프 처칠 경의 유산의 일부를 랜돌프 부인이 빼돌린 것이라고 하는 가족 간의 편지가 새롭게 발견되기도 했다. 그 서신에서는, 윈스턴의 부모가 그에게 잔소리를 해왔다고 하는 것과 윈스턴 그 자신의 명성을 부풀리기 위해서 가족들 사이에서 동생 잭의 역할을 축소해왔던 것 등의 그릇된 과거를 암시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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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urchills' position in London society, and Jennie's ambitions for her husband and sons, brought them into regular contact with Prince Albert Edward, Queen Victoria's heir, known as Bertie. The Prince was renowned for his sexual appetite and a string of mistresses, and reportedly held wife-swapping parties in his London home. Jennie, a dark beauty who has also been characterised as a sexual adventurer, did not escape his attention.

 

 

런던 사교계에서 처칠의 위치, 그리고 남편과 아들에 대한 제니(랜돌프 부인 - 윈스턴 처칠의 모친)의 야망은, Bertie(버티)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빅토리아 여왕의 후계자 앨버트 에드워드 왕자와의 정기적인 접촉을 성사시키기에 이르렀다. 왕자는 성적 취향과 여러 정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런던의 자택에서 아내 교환(스와핑) 파티의 주최자로 유명했다. 성적인 모험을 즐겼던 어둠의 귀부인 제니는 그러한 관심을 오히려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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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팔고 다니는 모친 덕분에 살아남은 거라고 봐야 된다는 거죠.

 

 

진짜 운 좋게 히틀러라는 광기의 상징이 등장해준 덕분에 그 비리 등등이 그대로 묻혀서 승승장구한 것에 불과합니다.

 

애초에 2차 대전 발발 시점의 수상 자리는 그야말로 누가 앉더라도 계륵이었고, 바늘방석이었거든요.

 

헌데 그걸 역이용해서 일단 자리에 차고 앉은 다음 '불구대천의 원수 히틀러를 잡자!' 라는 이데올로기로 자신이 무슨 희대의 명 지도자 인 것처럼 포장한 겁니다.

 

 

실제로 미국이 제대로 개입하기 전 시점, 그때까지의 처칠의 판단 내용은 '말해 뭐하나' 수준이 대부분입니다.

 

미국은 본토가 거의 멀쩡한 상황이라 생산력을 100% , 아니 Show me the Money 치는 게 가능했던 것도 있지만, 그래도 영국보다는 그나마 판단이 잘 돌아갔죠.

 

당장 레이더를 개발해놓고도 그걸 제대로 활용할 생각을 아예 안 한 영국입니다.

 

 

그런 진실을, '히틀러 잡았으니까 된 거지! 뭘 바래! 빨갱이가 뭐래!?' 당시에는 그저 찍어누른 겁니다.

 

그걸 '철의 여인' 대처가 어느 정도 카피하기도 했습니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찍어누르기와 적극적인 민영화 + 노조 빨갱이칠로 포장하는 수법으로 바뀐 거죠.

 

하여간에, 결론을 내자면.

 

윈스턴 처칠은 연구의 깊이를 더할수록 괴담만 나오는 게 현실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위인이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이미 다른 '진짜 위인'들에 대한 모독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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