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요약]
일본은 안준생이 안중근의 거사에 대해 일본에 대한 사과를 할것을 요구
했고 이에 안준생은 이토의 아들에게 사과를 했다.
항일인사들은
안준생이 친일행적을 한데에 대해
호랑이의 개새끼 라고 욕하자 이에 항변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조차 뉴xxxxx에 의해 물타기 됐다는 썰이 있다
일제의 지시에 따라 안중근 의거 30주년인 1939년에 이토 히로부미의 유족에게 사죄를 한 친일파다.
한국의 독립 운동가 영웅인 안중근 의사의 차남이다.
1907년생으로 아버지인 안중근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을 무렵 태어났다.
4세 때 부친을 잃고 불령선인으로 찍혀 비참한 성장기를 보냈다.
형 안분도는 어린 시절 길에서 누군가가 준 과자를 먹고 중독돼 일찍 죽었고,
가족들은 특별히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도 못했으며 중국으로 망명가듯 떠나야 했다.
그는 일제에 의해 평생을 감시와 탄압을 받으며 살았다.
[친일행적]
1939년 10월 16일, 사죄와 함께 일제에 충성을 바치겠다고 한 후로는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인 분키치(文吉)를 경성 조선 호텔에서 만나 제 부친께서 어리석은 생각으로 당신의 아버님을 죽게 만들었는데 이에 아들로서 아버지의 오만방자한 만행을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는 일제에 의해 널리 선전되었으며,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에도 대서특필되었다.
이로 인해 아버지는 물론 아버지의 훌륭한 업적을 반겼던 조선인들으로부터 천하의 불효 자식, 친일 매국노,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한 더러운 개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에 백범 김구가 중국 측에 처벌을 요청했으나 중국 측이 이를 면제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에게 이를 갈던 중국에서도 안준생을 별로 반기지 않았고, 결국 광복 이후에 중국에서 비참하게 살다가 6.25 전쟁 와중인 1951년에 안경근과 안춘생, 그리고 몇몇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병으로 죽었다.
안중근의 친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는 달리 매국노에 친일파로 변절한 영향 때문에 결국 친일인명사전 목록에도 이름이 올라갔다. 중앙일보나 조선일보는 형 안분도가 독살된 것처럼 자신도 늘 위협해 시달렸다는 걸 들먹이며 옹호 기사를 썼다.
안준생을 다룬 소설로 前 국사 편찬 위원장 이태진 교수가 쓴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가 있으며, 인터넷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다.
[반론]
다른 주장도 존재한다....
사실은 사죄하는 것이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말이 나왔다.(유튜브)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MBC가 취재한 인물들의 주장이라 많은 검토가 필요한 상황.
독립운동에 투신한 안중근 일가가 안중생과의 연을 끊지 않았던 점을 거론하며 근거가 있다고 주장도 있는데 일제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 독립운동한다고 서로 사이 좋은것도 아니고, 오늘날 분류로 반민족행위자라고 독립운동가와 소위 친일파가 교류하고 도움받은 일도 무척 흔하다.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의 가족을 지원해 준게 일본육사 동기이자 일본군 중장 홍사익이었다. 그들의 동기이자 일본군 대좌 이응준은 장인 이갑이 독립운동가였고, 이들의 육사 1년 후배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종혁은 수감을 마치고 산송장이 되었을때 동기 김석원 대좌에게 다방면으로 도움을 받았다. 자칫하면 서로 총부리 겨누게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이랬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해방후 일제때 금광부자가 된 친일성향의 최창학이 마련해준 경교장에서 지냈고 그의 저작 백범일지를 윤문해준 사람은 그 춘원 이광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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