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미는 진화의 바퀴를 굴려온 원동력이다.
진화는 지성과 의지로 굴러온게 아니라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려는 욕망이 없었다면
지구는 아직도 아메바들이 최신 생물체였을 것이다.
사마귀의 성생활은 이상할 정도로 유명하다.
암사마귀가 수컷과 열심히 교미를 하는 동안
대가리를 뜯어먹는다는건 초등학생도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사실 사마귀 수컷들은 의외로 꽤 팔자 좋은 편이다.
100% 잡아 먹히는 것도 아니고 도망갈 수도 있고 생존률도 꽤 높다.
사마귀들 수컷을 사실 꽤 꿀빠는 종족이라 이거다.
이런 운 좋은 애들 말고 훨씬 힘들게 살아가는 동물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가리 뜯어먹힐 수도 있는 종족이 운 좋다고 표현될만큼 자연의 교미는 가혹하다.
교미를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어떤 생물들은 차라리 고자가 되는게 교미하는 것보다 훨씬 행복한 인생을 보장한다.
못생긴 풍선장어라는 물고기가 있다.
입이 크고 물을 빨아들여서 몸을 풍선처럼 부풀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신기한 친구들이다.
딱 보면 알겠지만 이 못생긴 친구들에게 가장 소중한 신체부위는 당연히 입이다.
심해만큼 살기 힘든 환경이 없기 때문에 심해어들은 죄다 진화테크를 극단적으로 찍었는데,
얘들은 입에 몽땅 테크를 꼬라박은 케이스다.
입이 몸의 절반까지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어지간한건 다 먹으면서
심해의 거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것이다. 입 한 번 벌렸다 닫으면 자기덩치보다 큰
먹이도 잡아먹을 수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눈코귀팔다리 다 합친 것보다 입이 더 중요한 생물이다.
근데 이것도 발정기가 오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발정기가 오면 풍선장어도 지구 위의 모든 생물체와 마찬가지로 생식기가 넘버원이 된다.
사악한 생식기의 명령으로 풍선장어의 몸에는 무시무시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번식기에 접어든 풍선장어는 단 번에 알아볼 수 있는데
왜냐면 저 트레이드마크인 입이 퇴화해 버리기 때문이다.
풍선장어가 지금까지 자기 목숨줄을 연명시켜줬던 입을 포기하는 이유는 뭘까
심해라는 최악의 생활환경이 그런 희생을 강요한다.
심해는 넓은데 깜깜하고 생물밀도는 절망적인 환경이다.
먹잇감 구하는건 고사하고 같은 동족 암컷 찾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풍선장어는 발정기가 오기 전까지는
아예 신체에 재대로 된 생식기도 만들지 않고 금욕적으로 살아간다.
성행위는 에너지를 막대하게 소비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발정기가 찾아오면 입이 퇴화되면서 동시에 후각기관과 성기는 엄청나게 커지면서
완전히 다른 생물로 각성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물고기였다면 지금은 지느러미달린 생식기이다.
심해에서 두 마리의 풍선장어가 만나 교미하는 것은 엄청 어려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미를 하려면 일단 생식기가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거고,
일단 암컷을 찾는 것만 해도 엄청나게 어려우니 후각기관을 대폭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후각기관이랑 생식기를 키우는 것도 영양분을 대량으로 소모하는데
그래서 풍선장어는 자기 몸에 달려있는 자랑스럽고 소중한 기관인 입을 가차없이 녹여서
영양분으로 소비해버리는 것이다. 입을 포기하고 얻은 자원으로 코를 대폭 강화시키고
생식기를 세운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해를 헤엄쳐 가는 것이다.
운 좋아서 암컷의 냄새를 찾는다면 환호하며 교미를 시작할 수 있다.
입이 없어서 실제로 소리는 안 나지만 입이 없어도 성기는 달려있으니까.
암컷을 못 만나면? 입이 없으니까 하루살이처럼 굶어 죽게 되는거고.
발정기가 시작된 순간 풍선장어에게 시한부 인생은 확정된다.
참고로 암컷은 번식기 들어서도 딱히 몸이 변화하거나 하진 않는다.
교미를 향한 욕망으로 극단적인 희생을 하는 종족은 생각보다 우리 아주 가까이에 있다.
목이 길어 슬픈 사슴이 바로 그것이다.
수컷 사슴들이 발정기가 올 때마다 서로 치열하게 찔러대려고 키운 무기가 뿔이다.
사슴 중에서 가장 강한 인싸만이 교미를 할 수 있고 나머지는 평생 아다로 살아야 한다.
그러니 사슴 수컷들도 결사적이다.
네셔널지오그래픽이나 디스커버리에서 말랑말랑한 순화영상만 봤다면
그냥 평범한 힘겨루기처럼 보이겠지만 이들의 전투는 잔혹하다.
정정당당한 격투기가 아니라 모탈컴벳이다.
사슴뿔은 끔찍한 살상무기다.
날카롭고 갈래가 많아서 공격이 사방으로 가능하다.
어떻게 방어해도 결국 뿔에 찔리는 건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사슴끼리 싸우면 피바다가 되는 건 예사다.
더 끔찍한 건 오로지 공격용으로만 진화한 뿔이라 서로 엉키면 풀 방법이 없다는 거다.
양이나 코뿔소 같이 신사적이고 심플한 뿔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슴배틀은 자연계에서 보기 드문 상대가 뒤져야만 끝나는 동족간 데스매치가 되기 십상이다.
물론 상대가 뒤진 후에도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발정기가 찾아오는 무렵이 되면 잘린 상대의 머리를
자기 뿔에 올려매고 다니는 수컷들이 돌아다니게 된다.
전투에선 이겼지만 뿔을 풀 방법이 없어서 적의 목을 뜯어낸 결과다.
이제부턴 죽은 머리통이 완전히 썩어서 떨어져나가기 전까지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함께해야 한다.
이렇게 무거운걸 머리에 올려놓고 다니니 위생상으로 안 좋은 건 둘쨰치고
밥 먹기도 힘들고 포식자에게서 달아나기도 힘들다.
심지어 머리에서 풍기는 썩은내가 포식자를 끌어들이는데 싸울 수도 없다.
자기가 죽인 놈의 대가리가 자기 뿔을 봉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저주인 데스!
뭐 그래도 한 쪽이 살아남은 경우면 그래도 운 좋은 편이다.
이렇게 셋 이상이 쓰리썸 배틀을 하다 서로 얽혀버리면 끝장이다.
사진에 보이는 교미의 숙주들은 쓰리섬 배틀을 하다 홍수가 밀려오는
판국에도 멈추지 않고 끝내 동반익사를 선택했다.
이게 전부 교미를 향한 욕망이 이런 끔찍한 결말을 만든 것이다.
발정기에 싸우다가 죽는 것 정도야 다른 종족 수컷한테도 다 있는 일이지만
수컷 사슴이 뿔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충격적이다.
현존하는 사슴 중에서 전투력 끝판왕인 말코손바닥사슴이란 놈들이 있다.
덩치도 360kg이나 되고 성질머리도 지랄맞게 더럽고
문제의 그 뿔은 공룡시대 트리케라톱스도 인정할만큼 엄청 크다.
뿔 무게만 따져도 하나에 18kg이 넘고 길이는 1.2m까지 자라는 대형무기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매년마다 뚝하고 떨어지고 처음부터 다시 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항상 날카롭고 단단해서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이건 다른 사슴들도 다 똑같다.
그런데 생각해봐라.
1.2m짜리 18kg짜리 무기를 매년마다 몸에서 만든다는게 쉽겠음?
그 영양분이 다 어디서 나오는데?
발정기가 찾아오기 몇 달 전부터 수컷 사슴들은 뿔갈이를 시작하고,
이때부턴 평소에 먹던 음식의 두 배씩을 먹지 않으면 반드시 굶어죽게 된다.
왜냐하면 머리 위에서 전속력으로 자라나고 있는 새 뿔이 온몸의 영양분을 전부 빨아먹기 때문이다.
게다가 뿔은 뼈의 일종이라 칼슘이랑 인을 대량으로 소모하는데
문제는 사슴들이 초식동물이란 말이다.
뼈까지 바스라뜨려 먹는 육식동물이면 모를까 풀이나 먹고 사는 비건들이 어디서 칼슘을 먹겠냐?
그럼 그 칼슘이랑 인을 어디서 꺼내오겠냐?
수컷들은 풍선장어랑 똑같은 선택을 한다.
지들 몸을 희생시키는 거임. 온몸의 뼈에서 칼슘과 인을 짜내서 뿔에 집중시키는 거다.
당연하지만 뿔이 자라는 동안 온몸을 빨린 수사슴들은
끔찍한 골다공증과 영양부족에 시달리며 비틀거린다.
발정기의 최절정에 이를 무렵 이 뿔들은 다 자라나고,
몸무게의 4분의 1을 잃은 수사슴들은 뿔로 서로를 찔러대기 위해 모탈컴벳을 시작하는 것이다.
싸우다가 죽을 수 있는 건 당연한 소리고,
죽지 않아도 위 사진의 사슴처럼 뿔 위에 라이벌 머리통을 얹고 살아가야할 수도 있고,
가장 운이 좋아서 살아남고 교미까지 마친 후에도 뿔이 빨아먹은 영양분을 보충하지 못하면
쇠약사 할 수도 있다. 참고로 사슴의 발정기는 겨울 직전에 오기 때문에 시간은 몇 주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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