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제가 기다리던 횡단보도를 차량 한 대가 덮친 적이 있습니다.
제 앞에 계시던 한 분이 차에 깔려 돌아가셨지요.
사람이 죽는 걸 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고, 그 참혹함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 미디어를 통해서 접했던 사고 모습과는 전혀 달라요.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저는 사고 트라우마로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였던 학생이 자살하는 일이 있었죠.
그 비극의 원인을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죽어가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밤에 잠이 들 때도 그 광경이
생각나죠. 저와 일면식도 없던 타인의 죽음 조차 그렇게 상흔을 남기는데, 지인이나
동료의 죽음. 그리고 그 상황은 훨씬 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2. 전쟁 트라우마도 마찬가지. 영화 퓨리를 보면, 마지막에 동료들이 목숨을 무릅쓰고
전차 안에서 싸우죠. 저는 그게 애국심을 고취하는 영화적 수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닙니다. 오랫동안 전쟁을 겪으면서 동료들이 포탄에 찢어지고,
불에 타죽으면, 설령 전쟁이 끝나서 집에 돌아간다고 해도 그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들은 싸움을 택한 거겠죠.
3.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유족에게 건네는 동료들의 위로입니다. 매우 용감한 죽음이었다거나
전우를 위한 희생이었다거나. 영화 1917 에서도 마지막에 형을 찾아 죽음을 알려주지요.
저는 이것 또한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군인 특유의 예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좀
다릅니다. 죽음을 함께 경험한 사람들은 알게 되는데, 죽는 순간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겪은 사고의 피해자분은 사망 당시에 이미 의식이 없으셨습니다. 충격과 공포 속에서
떠올린 유일한 위로이지요. 그 말을 전해주기 위해서 저는 낯선 도시를 헤매고 장례식장을
물어 상주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고통 없이 돌아가셨다고, 마치 잠든 것처럼 편안한 죽음
이었다고 말씀드렸죠. 그리고 상주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보통 일반적인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을 잘 떠올리지 못합니다. 가령 지진이 나서 죽었다.
산불이 나서 죽었다. 총기사고로 죽었다고 하면, 삶에서 죽음으로 순식간에 이동한 줄 압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죠. 지진이 나서 머리에 충격을 받고 죽는 것과 24일 동안 구조를
기다리다 아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그러니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은 당연히
그 진실을 말해줄 책임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4. 그리고 혼자서 맞는 죽음을 더이상 슬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흔히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죽음을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고독사를 걱정하는데 사실 아무리 사랑 받는 연예인이라고 해도
죽음의 순간에는 혼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고통 없는 죽음이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족분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지금도 그 신호등 앞에 서면 마음이 매우 무겁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서서
파란 불을 기다리고요. 아마 잊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고통 없는 편안한 죽음이셨으니, 유족분들은 생전 환했던 미소로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nandaboro' 님의 글을 옮겨 왔습니다.
.
'세상만사 보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대한민국에서 정의를 지키려고 하겠는가? ..... 역사는 반복된다 (0) | 2023.12.28 |
---|---|
매년 2번씩 50년째 열린다는 동창회 ..... 초등학교 4학년 1반 동창회 (0) | 2023.12.28 |
저희 엄마는 환갑이라는 젊은 나이에 치매에 걸리셨습니다 ..... (0) | 2023.12.27 |
이판사판 고양이판에 개까지 추가 ..... 19마리 반려동물과 사는 여자 (0) | 2023.12.27 |
6년 전 채팅으로 첫 만남 ..... 여자의 외도를 의심한 후 잦은 싸움 (0) | 2023.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