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이봉창은 일본에 건너가 오사카에서 일본인의 양자가 되었고 '기노시타 쇼조'라는 일본식 이름도 얻었다. 젊은시절 이봉창은 일본을 정말 좋아했으며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오히려 일본인처럼 살고 싶어했다.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 될 거라고 믿어 일본어 공부도 매우 열심히 하여 현지인 수준으로 유창하게 하고 3.1 운동이 일어났을 당시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조선인이었고 식민지 사회에서 차별을 받으면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