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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폭동의 이면 ..... 두순자 사건

딸랑이* 2021. 6. 17.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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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폭동 사건이라고 하면

무장 자경단을 조직해 흑인들과 싸운

한인들의 무용담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에서 한인들은 일방적인 피해자였고

흑인들은 일방적인 가해자였다고 기억하고 있다면

좀 더 기억을 더듬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L.A 폭동은

백인 기득권층의 의도대로

피해자들끼리 서로 총구를 겨눈

불행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L.A 폭동이 일어나기 1년 전인 91년 3월 3일,

아프리카계 미국인 로드니 킹은 과속운전을 하다가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백인 경찰들은 그를 무자비하게 폭행했으며

로드니 킹은 그 후유증으로

청각장애인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일 년 후 92년 4월 29일,

로드니 킹을 폭행해 장애인으로 만든 백인 경찰들은

백인 배심원단으로 꾸려진 법정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납니다.

 

흑인들은 분노했고 그날로부터 시작된 폭동은

5월 4일까지 엿새 동안 53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

그리고 10억 달러가 넘는 재산 피해를 일으켰습니다.

 

당시 L.A 경찰들은 폭동으로부터 백인 거주지만을 보호하며

한인 거주 지역을 치안 공백 상태로 만들었죠.

 

의도적으로 흑인 Vs 한인 대결 구도를 만들어

흑인들의 분노를 한인들에게 향하도록 함으로써

유색인종끼리의 충돌로 몰아갔던 겁니다.

 

이것이 대다수 사람들이 기억하는

L.A 폭동일 겁니다.

 

 

그런데.... 왜 그 당시 흑인들이

백인이 아닌 한인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는지

기억하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로드니 킹 사건과 같은 시기에 일어났던

한 사건 때문입니다.

 

바로 라타샤 할린스 살해 사건이죠.

 

 

91년 3월 16일,

한인 여성 두순자는 자신의 가게에서

15세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의 뒤통수를

권총으로 조준 사격해 살해했습니다.

 

두순자는 라타샤가 몰래 주스를 가방에 넣어 훔쳐가려했고

돈을 지불하라고 하자

"무슨 오렌지 주스요?"라고 발뺌했으며

가방으로 자신을 가격하고

자신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은 다른 증언을 합니다.

 

라타샤는 주스값을 지불하기 위해 손에 지폐를 쥐고 있었는데

두순자가 먼저 라타샤에게 욕설을 하며 옷을 잡아챘고

라타샤가 돈을 지불하려고 했다고 밝혔음에도

계속 욕을 하며 도둑으로 몰아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CCTV를 보면

라타샤는 자신을 잡아채는 두순자에게

가방을 휘두르며 저항하지만

두순자가 손을 놓치자 뒤로 물러납니다.

 

이어 두순자가 자신을 향해 의자를 집어던졌음에도

라타샤는 주스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돌아서서 가게 문쪽으로 걸어갑니다.

 

하지만 두순자는 그런 라타샤의 뒤통수를 향해

권총을 조준한 뒤 방아쇠를 당겨 살해하죠.

 

그리고 1년 후 92년 4월 21일,

배심원들은 두순자를 2급 살인죄로 판단했지만

정작 법원은 두순자에게 형을 선고하지 않고

4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과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해 버립니다.

 

분노한 흑인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서명을 받아

재심을 요구했지만 법원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죠.

 

그리고 일주일 후,

로드니 킹을 장애인으로 만든 백인 경찰들까지

또 다시 무죄 판결을 받게 되자

흑인들의 분노는 겉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L.A 폭동 사태가 터지게 됩니다.

 

 

당시 미국 언론은

두순자가 라타샤를 살해하는 장면을 반복해 보도하며

흑인들의 분노가 한인들에게 향하도록 유도했습니다.

 

흑인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한인들을 먹잇감으로 내어준 것이죠.

 

반면 당시 한국 언론은

라타샤가 두순자에게 격렬하게 저항하는 모습만 보여주며

두순자가 정당방위로 총을 쏠 수밖에 없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죠.

 

실제 그 사건에서 일어났던 일과

목격자들의 증언은 무시한 채

자신들이 선동하고 싶은 메시지를 위해

한 소녀의 죽음을 이용했던 겁니다.

 

 

두순자 사건 이전부터

한국계 이민자들 중 상당수가

흑인들을 멸시하고 차별했다는 것은

당시 루프 코리안의 일원이었던 교민들도

스스로 인정하고 고백했던 일입니다.

 

물론 또 그 이전엔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빈곤의 대물림이 이어졌던 흑인 빈민층이

갱단으로 흘러들어가

한인 상점을 습격하는 일들이 잦았기에

한인들이 흑인들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고요.

 

결국 L.A 폭동은 오랜 세월 미국 사회에서

시스템처럼 구축된 인종차별이 곪아 터진 일이며

그 와중에 한인들 역시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어

유색인종들끼리 총부리를 겨누게 되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L.A 폭동 사건의 교훈은

"그래, 흑인놈들에겐 한국인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본때를 보여줘야 해!"가 되어선 안 됩니다.

 

증오에 선동당하는 것은

이 뿌리깊은 인종차별을

해결할 방법이 될 수 없으니까요.

 

 

최근 코로나로 인해 아시안들이

일부(!) 흑인들의 증오범죄 대상이 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흑인들에게 똑같이 되갚아주자는 것은

스스로 인종차별주의자가 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때려도 맞고 있기만 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좀 더 본질을 보자는 이야기죠.

 

 

왜 우리만 고상해야 하고

왜 우리만 저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하는 거냐고

억울해하는 분들이 있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흑인들 중에도 아시안 차별에 반대하고

혐오와 차별의 고리를 끊기 위해

아시안들과 협력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폭행한

일부 악덕 한국인 고용주가 있다고 해서

동남아인들이 모든 한국인을 악마라고 비난한다면

우리도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큐사랑' 님의 글을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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