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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26

조선 시대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했던 짓 .....

1. 사도세자가 태어나고 막 돌이 되자마자 왕세자에 책봉. 영조는 나이 마흔에 얻은 사도세자가 너무나도 이쁘고 대견스러워서 왕세자로 책봉했으나 이것부터가 사도세자에겐 비극의 시작. 사도세자가 왕세자가 되면서 생모와 떨어져 동궁전에 기거하게 되었고 경종을 모시던 궁인들이 사도세자의 시중을 듬. 궁인들은 세자의 생모 영빈이씨가 출신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헐뜯고 업신여겼으며 세자는 이곳에서 어머니의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한채 자람 2. 경종 시절 온갖 고생을 겪으며 믿을 건 자신밖에 없다는걸 알고 완벽주의자가 된 영조는 사도세자도 그렇게 완벽한 왕으로 만들기 위해 엄격하게 키움. 사도세자가 4살때부터 구박하기 시작했으며 사람들 앞에서 세자를 망신주기를 반복함. 날씨가 좋지 않으면 사도세자가 덕이 없어서 그런거다..

조선시대 역사상 가장 과소 평가된 왕 .....

문종(文宗, 1414년 11월 15일 (음력 10월 3일) 조선의 5대 왕이며 그 세종대왕의 장자이다. 대중매체에서는 수양대군을 포스넘치는 빌런으로 만들기 위해 문종이 동생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그저 주변에 아들인 단종을 잘 부탁한다며 힘없이 죽어가는, 아무것도 못하고 단명한 유약한 왕처럼 묘사가 된 작품이 많이 있으나 말년에 갑자기 등창이 심해져서 사망한건 맞지만 원래부터 병약했던 것이 아니었음 사실은 그와는 완전히 다르다. 1. 수양대군은 문종이 떴다 하면 기도 못펴고 쭈그러져 있었다. 실제로 실록에 따르면 영화 ‘관상’에서의 포스넘치는 수양대군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고 문종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싸바싸바하고 다녔다는 기록들이 있으며 문종은 조선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통성..

수원 갈비가 유명한 이유 .....

수원하면 떠오르는 소갈비는 조선 시대 우시장과 관련이 있다. 조선 정조 때 수원화성을 지으면서 자재 운반용으로 소가 많이 유입됐다. 화성 완공 후 정조는 소를 농민에게 나눠주고 농사를 짓게 했다. 소는 점점 더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우시장이 생겼다. 수원 우시장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전국 3대 우시장으로 꼽혀왔다.(사진1) 현재 매향 중학교 수원천 건너편 인근인 팔달구 북수동 274번지 일대다. 수원과 인근의 화성, 오산, 용인, 평택은 물론 전라도와 경상도 등 전국 각지의 소가 몰려들었다.(사진2) 한국전쟁 후 피난민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집이 생기고 길이 좁아지자 1960년대 영화동으로 이전했다. 1970년대엔 한해 2만 4,000마리의 소를 거래할 정도로 번성했다.(사진3) 이후 점점 쇠퇴해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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